공지사항
커뮤니티 > 공지사항
무예신문에 연재되는 국선도무예협회 2탄 덧글 0 | 조회 8,105 | 2014-05-07 19:28:18
관리자  
무예역사기행
무예역사
“우연히 만난 노인, 소년 청산에게 국선도 가르쳐”
기사입력: 2014/04/30 [19:13]  최종편집: 무예신문
박진후 국선도무예협회 총재


▲박진후 국선도무예협회 총재 © 무예신문
청산선사의 스승의 이름은 이송운, 법명은 청운(靑雲)이다. 청산과 스승의 만남은 지난 1948년 이뤄졌다. 그 해, 청산은 태학산 해선암에 머물고 있었다. 머리를 밀고 자진하여 사미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 머물길 반년 쯤 지났을 때였다. 주지스님은 여느 때처럼 불경공부를 하고 있던 청산을 광덕사로 심부름 보냈다. 거리가 좀 되어서인지 하룻밤 자고 오라고 하였으므로 청산은 느긋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청산은 돌을 던지기도 하고 불경을 외우기도 하며 장난을 치면서 걷기도 했다. 그때 길옆에 앉아 쉬고 있던 50세 가량 되는 노인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청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동자야. 그렇게 손으로 돌을 치면 손이 아프지 않느냐. 손으로 돌을 쳐서 돌을 부수어버리는 법을 배우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니, 청산은 얼떨결에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정색을 하고 “가르쳐 주지”라고 회답했다.

당시 13세의 소년이었던 청산은 그 노인에게 이끌려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아차 싶어 몇 번을 달아나려 했으나 실패를 하고 나서야 도망치기를 포기했다. 어린 청산은 장난삼아 대답한 말로 사제의 연을 맺고, 내공과 외공으로 이루어진 정통 선맥을 잇게 된다.

이때, 청운도인은 산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지 청산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산과 생식에 적응이 되자, 청산은 눈길을 돌리지 않고 한 곳만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을 배우게 됐다. 어떤 날은 산을 바라보게 하고 어느 날은 나무를 보게 했다. 또 어느 날은 조막만한 돌을 쳐다보며 몇 시간 동안 앉아있으라 했다. 사춘기 소년인 청산에게 정좌수행은 고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앉아 수련하길 1년여. 이듬 해 초여름이 되어서야 청운도인은 국선도 수련의 첫 단계인 정각도(正覺道)의 중기단법을 가르쳐주었다. 국선도 수련의 기초인 정각도를 3년간 수련한 청산. 이후 정각도의 세 번째인 원기단법에 이르니, 수련하면 할수록 몸에서 기운이 솟구치고 돌멩이를 손에 쥐고 힘을 주면 부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국선도의 다음 수련으로 진입할 때가 가까워 진 것이다.

처음 속리산에서 시작해서 소백산맥의 박달산, 치악산을 거쳐 다시 속리산으로 돌아오니 청산의 나이도 어느덧 20세가 되었다. 청운도인은 청년이 된 청산을 속리산의 작은 암자로 데리고 가서 하산준비를 시켰다.

생식만 하던 청산이 화식을 하고 인가근처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산속 암자인데도 음식 냄새, 사람 냄새, 거름 냄새 등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틈까지 막고 생식을 하며, 한 달이 경과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적응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청년 청산에게는 입산의 힘겨움 보다 산에서 나오는 고행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훈련을 시작한지 한 달여. 겨우 누룽지에 찬물을 말아먹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처럼 청산의 하산 준비기간은 거의 반년이 걸렸다. 하산한 청산은 어렸을 때 키워주시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후 1956년 육군에 입대했고 1959년 만기 제대 후 바로 입산해서 다시 수련에 전념했다.

재입산 후 시간이 흘러 청산의 내공과 외공 수련은 국선도의 세 번째 단계인 선도법(仙道法) 수련을 앞두고 있었다. 그 해 봄 어느 날, 수련 중에 낯선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인기척은 이내 사라졌다.

장마철에 식량으로 쓸 칡뿌리를 캐고, 처소로 돌아오는 도중 낯선 사람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다. 간신히 막아내고 반격하려 했으나 청산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괴인이 손, 발, 머리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내리 치는데 청산은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막기에 급급했다. 한참을 막다보니 이상한 점을 알게 됐다. 괴인은 청산을 단숨에 쓰러트릴 수 있는데 중요한 급소를 피하여 위험하지 않은 곳과 손으로 막아서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여유를 두고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싸우다 날이 밝아올 때 쯤, 괴인은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정신을 차린 청산은 밤새도록 꼼짝 못하고 얻어맞은 것이 억울하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되도록 그 괴인은 몇 번을 더 찾아왔다. 얻어맞지 않으려고 열심히 수련하였고 괴인이 올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맞섰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어느 날, 괴인의 공격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고 중요한 급소를 사정을 두지 않고 공격해왔다. 청산도 모든 힘을 다해 막고 싸웠다. 얼마 간 치고 박고 싸우는 중 갑자기 괴인이 공격을 멈추고 왼손을 번쩍 들더니 씩하고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청운도인은 “그래. 오셨었구나. 손을 들 때 몇 손가락을 펴더냐?”하고 물었다. 청산이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하니 “응, 그래? 언제 올는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했다.

며칠 후 청운도인은 국선도 수련의 세 번째 단계인 선도법의 수련방법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했다.

청운도인은 “지금부터 자유로이 어디로 가서든 가르쳐준 데로 수련해라. 그리고 때가되면 하산하여 국선도를 세상에 펼치고 후계자를 얻도록 해라!”하고 홀연히 떠났다.

청산은 스승의 명에 따라 국선도를 세상에 펼치기로 결심했다. 1965년 제자를 한명 받아들인다. 그가 후에 신력사(神力士)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 국선도무예협회의 청원(靑元) 박진후 총재이다. 청산은 박진후 총재를 첫 번째 제자로 받아들이면서부터 국선도 대중화의 첫 단추를 꿰었다. <계속>        
 
 
무예신문 (http://mooye.net/)